꾸미지 않아도 됩니다 — 어차피 티가 나거든요
동창회, 동네 모임, 처음 나가 본 취미 모임. 조금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말을 다듬게 됩니다. 그런데 연구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다듬은 티는 나고, 다듬지 않은 쪽이 오히려 좋게 보인다고요.
동창회, 동네 모임, 큰맘 먹고 처음 나가 본 취미 모임. 이 나이에 새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흔치 않아서, 막상 앉으면 조금 긴장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듬습니다. 어디까지 말할지 정하고, 자식 얘기는 어느 선에서 멈출지 계산하고, 한마디를 몇 번 고쳐 봅니다. 조금이라도 괜찮게 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 다듬는 과정이 거의 다 티가 납니다. 네 편의 연구가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돌려 말하면 오히려 눈에 띕니다

좋은 일을 그냥 말하기는 멋쩍습니다. 그래서 한 겹 싸서 말하게 됩니다. 자랑이 될까 봐 불평처럼 꺼내거나, 겸손을 앞에 붙이는 식으로요.
오불 세제르, 프란체스카 지노, 마이클 노턴 연구팀이 이 방식을 아홉 개의 연구로 파고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하는지 보려고 일주일짜리 일기 연구를 했고, 실제 상황에서 확인하려고 현장 실험까지 했습니다.
결과는 한 방향이었습니다. 돌려 말한 쪽이 그냥 말한 쪽보다 호감을 덜 얻었습니다. 유능해 보이는 정도도 낮았고, 부탁을 들어주는 비율도 낮았습니다. 불평으로 감싼 경우는 그냥 불평만 하는 것보다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듣는 사람이 말과 마음이 조금 어긋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감추려던 쑥스러움이 결국 제일 잘 보인 셈입니다.
꾸민 자리는 대개 꾸민 티가 납니다. 그리고 남는 인상은 내용이 아니라 그 티입니다.
나는 그냥 이야기인데, 상대에겐 자랑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게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고, 물어보니까 답하는 것이고, 설명이 필요해서 덧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는 쪽이 붙이는 이름표는 다릅니다. 아이린 스코펠리티 연구팀(카네기멜런대·런던시티대)이 2015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에 실은 논문의 제목이 정확히 그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자기표현’이라 부르고, 나는 ‘자랑’이라 부른다.
연구팀은 양쪽에 물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낸 사람에게는 “상대가 어떻게 느낄 것 같으냐”고,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느꼈느냐”고요.
말한 쪽이 기대한 반응과 듣는 쪽의 실제 반응은 달랐습니다. 감탄은 생각보다 적었고, 불편함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두 방향 모두 빗나간 겁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자기 기분을 상대에게 그대로 옮겨 놓고 짐작하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내가 좋으니 상대도 좋을 거라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부러움과 감탄은 그렇게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굳이 길게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길어지는 만큼 상대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남으니까요.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그다음은 상대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그게 오히려 오래 기억됩니다.
남 이야기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남습니다

할 말이 마땅치 않으면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게 됩니다. 오늘 안 나온 사람, 누구네 자식, 누구네 사위. 그런데 여기엔 조금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존 스코론스키 연구팀이 1998년 성격·사회심리학회지(JPSP) 에 발표한 특성 전이(spontaneous trait transference) 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의 기억에는 그 성격이 말한 사람 쪽에 붙어서 남습니다.
누가 인색하더라 하고 전하면, 시간이 지난 뒤 남는 건 전한 사람의 인색한 인상입니다. 무서운 건 듣는 사람이 그렇게 판단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이것이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자동적인 연상이라고 했습니다. “저건 저 사람 얘기지 이 사람 얘기가 아니잖아” 하고 정리해도 연상은 그대로 남고,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반대도 똑같이 성립합니다. 누군가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 그 따뜻함도 말한 사람에게 남습니다. 사람 기억이 원래 그렇게 붙여서 저장하니까요.
꾸미지 않은 쪽이 오히려 좋게 보입니다

그럼 꾸미지 않으면 초라해 보일까요. 요즘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 휴대폰 다루는 게 서툴 때, 아파서 한동안 못 나갔다고 말해야 할 때. 이런 건 감추고 싶어집니다.
독일 만하임대 안나 브루크 연구팀이 2018년 이걸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큰 실수를 인정하는 일, 크게 다툰 뒤 먼저 사과하는 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러는 경우와 남이 그러는 경우를 각각 평가하게 했습니다.
내가 하면 나약해 보였습니다. 남이 하면 용기로 보였습니다. 똑같은 행동인데 안에서 볼 때와 밖에서 볼 때가 정반대였습니다. 연구팀은 이걸 아름다운 실수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감추려 애쓰는 것들이 밖에서는 흉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것. 안에서는 지는 것 같지만 보는 사람 눈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연스럽게 만나요
네 연구를 나란히 놓으면 한 방향이 보입니다. 꾸미려는 건 티가 나고, 꾸미지 않은 쪽이 오히려 좋게 보입니다. 애써서 손해를 보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의외로 편합니다. 좋은 일은 한 문장으로 짧게. 없는 사람 얘기 대신 앞에 앉은 사람 얘기로.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이게 노력이 더 드는 쪽이 아니라 덜 드는 쪽입니다.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되고, 앞서 한 말을 기억해 둘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 나이에 새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흔치 않다 보니 더 힘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앞에 앉은 분도 사정은 같습니다. 서로 살아온 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굳이 힘주지 않아도 되는 자리면 좋겠습니다.
티타에서 만나는 자리도 그랬으면 합니다. 차 한 잔 놓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꾸미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티가 나거든요. 우리, 자연스럽게 만나요.
출처
- ·Sezer, Gino & Norton, 「Humblebragging: A Distinct—and Ineffective—Self-Presentation Strateg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 아홉 개 연구. 일주일 일기 연구와 현장 실험 포함. 겸손·불평으로 감싼 표현이 담백한 표현보다 호감·유능감·부탁 수용률이 모두 낮았고, 불평형은 단순 불평보다도 낮았다 ↗
- ·Scopelliti, Loewenstein & Vosgerau, 「You Call It ‘Self-Exuberance’; I Call It ‘Bragging’」 (Psychological Science, 2015) — 자기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상대의 긍정 반응을 과대평가하고 불편한 반응을 과소평가한다. 자기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하기 때문 ↗
- ·Skowronski, Carlston, Mae & Crawford, 「Spontaneous Trait Transference: Communicators Take on the Qualities They Describe in Others」 (JPSP, 1998) — 타인의 특성을 전한 사람이 그 특성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된다. 논리적 판단이 아닌 자동 연상이며 시간이 지나도 유지된다 ↗
- ·Bruk, Scholl & Bless, 「Beautiful Mess Effect: Self–Other Differences in Evaluation of Showing Vulnerability」 (2018, 만하임대) — 자신의 취약성은 나약함·노출로, 타인의 같은 취약성은 용기·진정성으로 평가한다 ↗
자주 묻는 질문
좋은 일을 겸손하게 돌려 말하는 게 낫지 않나요?
아홉 개 연구로 확인한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겸손이나 불평으로 감싼 표현이 담백하게 말한 것보다 호감도·유능해 보이는 정도·부탁을 들어주는 비율이 모두 낮았고, 불평으로 감싼 경우는 단순히 불평만 하는 것보다도 낮았습니다. 듣는 사람이 말과 마음이 어긋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모임에서 남 이야기를 하면 왜 손해인가요?
‘특성 전이’ 때문입니다. 1998년 연구에서, 타인의 성격을 전한 사람은 듣는 이의 기억 속에서 그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기억이 자동으로 붙여 저장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도 유지됐습니다. 반대로 좋은 이야기를 하면 그 따뜻함도 같은 방식으로 남습니다.
모른다고 말하면 무시당하지 않을까요?
2018년 만하임대 연구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약한 모습은 나약함으로, 타인의 같은 모습은 용기와 진정성으로 평가했습니다. 모른다고 말하거나 먼저 사과하는 일은 안에서는 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보는 사람 눈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번 주말, 차 한 잔 어때요?
결이 맞는 사람과 가까운 동네에서. 티타가 관계를 연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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