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인사이트

멋진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 여유의 정체는 ‘거리’였습니다

예의와 여유는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한 박자 물러서는 습관에 가깝습니다. 92개 추적연구, 60~90세 지혜 실험, 솔로몬의 역설로 읽는 어른다움의 정체.

·6

지난 글에서는 멋진 어른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썼습니다. 성숙은 상당 부분 저절로 오고, 멋짐은 결국 남이 매기는 점수니까요. 그 말은 지금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쓰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이 남았습니다. 저는 사실 되고 싶거든요. 화를 덜 내는 사람, 서두르지 않는 사람, 아랫사람에게도 말을 가려 하는 사람.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개는 오늘도 그러지 못했다는 반성으로 하루가 끝납니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쪽을 봤습니다. 그런 어른다움을 실제로 재 본 연구들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른다움은 성품이 아니라 자세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세에는 이름과 방법이 있습니다.

멋진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 어른다움은 성품이 아니라 자세에 가깝다는 티타 인사이트 카드
티타 인사이트 · 관계수업 #12

‘어른답다’는 말은 막연한 칭찬이 아니다

어른답다는 말은 막연한 칭찬이 아니다 — 92개 종단연구에서 성실성 우호성 정서적 안정이 나이 들수록 올라간다는 티타 인사이트 카드
Roberts 외, 92개 종단연구 메타분석 (2006)

심리학자 브렌트 로버츠 연구팀은 성인의 성격을 추적한 종단연구 92개를 모아 분석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변하는지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올라간 항목은 이랬습니다.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 그리고 노년에 접어들어서는 우호성. 약속을 지키고,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남을 모나지 않게 대하는 성향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 참 어른답다’고 말할 때 가리키는 게 정확히 이것들입니다.

다행인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이 변화는 결심과 무관하게 어느 정도 진행됩니다. 여섯 개 특질 중 네 개가 중년과 노년에도 계속 움직였습니다. 다만 이건 평균입니다. 같은 나이에도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는 뜻이고, 저절로 오는 몫과 내가 정하는 몫이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유의 정체는 감정이 식은 게 아니라 ‘거리’였다

갈등 앞에서 가장 현명한 건 60~90세였다 — 여러 입장을 헤아리고 타협의 여지를 남기고 내가 다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추론에서 노년층이 앞섰다는 티타 인사이트 카드
Grossmann 외, PNAS (2010)

이고르 그로스만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갈등 상황을 읽히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 같은지 말하게 한 뒤, 그 추론의 질을 채점했습니다. 젊은 층, 중년층, 60~90세를 비교했더니 두 실험 모두에서 노년층이 가장 현명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현명했느냐입니다. 여러 입장을 동시에 헤아렸고, 타협의 여지를 열어 뒀고, 자기가 아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판을 넓게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여유’는 무던한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습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일 앞에서는 다들 무너진다 — 솔로몬의 역설

솔로몬의 역설 — 남의 일에는 현명한데 내 일에는 그러지 못한다는 티타 인사이트 카드
Grossmann & Kross, Psychological Science (2014)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로스만과 이선 크로스는 같은 사람에게 남의 문제자기 문제를 각각 주고 추론을 시켜 봤습니다.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남의 일에는 현명했고, 자기 일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연구진은 이걸 솔로몬의 역설이라 불렀습니다. 온 나라의 분쟁을 지혜롭게 가려 준 솔로몬 왕이 정작 자기 집안은 다스리지 못했다는 데서 따온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격차는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모두에게 나타났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친구의 부부싸움 얘기를 들으면 “양쪽 다 이유가 있지”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서면 상대 입장이 안 보입니다. 무례해지는 순간은 대개 여기입니다. 성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어서입니다.

해법은 이미 실험으로 나와 있다

멀리서 보는 사람처럼 — 자기 거리두기 한 문장으로 지혜로운 추론이 올라갔다는 티타 인사이트 카드
Kross & Grossmann, JEP: General (2012)

크로스와 그로스만은 사람들에게 자기 문제를 떠올리게 하되, 한 무리에게만 이렇게 일러 줬습니다. “멀리 있는 관찰자가 그 일을 지켜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한 문장으로 지혜로운 추론이 올라갔습니다. 여러 관점을 고려하는 정도, 자기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정도가 함께 올라갔습니다. 태도와 행동까지 바뀌었습니다. 이후 연구에서는 이 방법이 남의 일과 내 일 사이의 격차 자체를 없앴습니다.

심리학은 이걸 자기 거리두기(self-distancing) 라고 부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닙니다. 자리를 한 칸 옮겨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 보시면 이렇습니다.

화가 올라올 때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대신 ‘○○은 지금 왜 화가 났을까’ 하고 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것. 말이 나가기 전에 ‘지금 이 말, 남이 들으면 어떻게 들릴까’를 한 번 떠올리는 것. 상대의 말이 거슬릴 때 ‘이 사람은 무엇이 걱정돼서 저렇게 말할까’ 하고 한 번 묻는 것.

예의는 참는 게 아니라 한 박자 늦추는 것이고, 그 한 박자에 자리를 옮길 시간이 들어갑니다.

다만, 혼자서는 연습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읽고 ‘굳이 그렇게까지’ 싶은 분도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위 연구들이 재고 있는 건 남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데리고 다니느냐입니다. 그건 애쓸 값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걸립니다. 그로스만이 잰 지혜는 전부 사회적 지혜였습니다. 여러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타협의 여지를 남기는 것도,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 상대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자기 거리두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리를 둘 대상이 있어야 연습이 됩니다.

은퇴하고,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부딪힐 일 자체가 줄어듭니다. 편해 보이지만 그만큼 연습할 자리도 함께 사라집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마주 앉았을 때 유독 말이 뻣뻣해지는 건, 성격이 굳어서가 아니라 한동안 쓰지 않아서입니다.

티타를 만들며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이겁니다. “요즘은 누구랑 부딪힐 일이 없어요.” 편하다고 하시면서도 목소리 끝이 조금 아쉽습니다. 부딪힐 일이 없다는 건 연습할 일도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 오늘은 위 세 문장 중 하나만 기억해 두셔도 충분합니다. 화가 올라올 때 자기 이름을 한 번 불러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한 박자가 생깁니다.

멋진 어른은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보는 것, 그리고 물러설 자리를 곁에 두는 것.

출처

자주 묻는 질문

‘솔로몬의 역설’이 무엇인가요?

같은 사람이 남의 문제는 현명하게 판단하면서 자기 문제 앞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온 나라의 분쟁을 지혜롭게 가려 준 솔로몬 왕이 정작 자기 집안은 다스리지 못했다는 데서 따온 이름으로, 그로스만과 크로스가 2014년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모두에게 나타났습니다.

‘자기 거리두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자기 일을 남 일처럼 한 칸 떨어져 보는 것입니다. 실험에서는 “멀리 있는 관찰자가 그 일을 지켜본다고 상상해 보라”는 지시 하나로 지혜로운 추론과 태도, 행동이 모두 개선됐습니다. 일상에서는 화가 날 때 ‘나는 왜’ 대신 자기 이름을 넣어 ‘○○은 왜’ 하고 묻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스러워지지 않나요?

일부는 그렇습니다. 92개 종단연구 메타분석에서 성실성과 정서적 안정성은 성인기 내내 올라갔고 우호성은 노년에 상승했습니다. 다만 이는 평균이고 개인차가 큽니다. 또 솔로몬의 역설은 나이가 들어도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오는 몫과 스스로 정하는 몫이 따로 있습니다.

이번 주말, 차 한 잔 어때요?

결이 맞는 사람과 가까운 동네에서. 티타가 관계를 연결해요.

앱 다운로드
#중년#5060#어른#지혜#여유#솔로몬의 역설#자기 거리두기#성숙